제주 숨겨진 장소

제주 방선문(訪仙門) — 역사와 사실에 기반한 상세 소개

제주 방선문은 제주시 오등동 한천 계곡 중류에 자리한 독특한 자연 지형으로, 자연 경관과 문화 유산이 결합된 매우 특별한 장소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신선을 찾아가는 문’ 또는 ‘신선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실제로 예로부터 풍류와 전설이 풍부하게 전해 내려온 명승지입니다.

1. 방선문의 기본 정보

방선문은 2013년 명승 제92호로 지정된 국가 지정문화재로, 약 1만 5천여 제곱미터 규모의 암석 계곡입니다. 두 개의 지번으로 구성된 자연유산 지역이며, 계곡 특유의 암반하천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자연 지형의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옛 제주에서는 ‘들렁궤(또는 들렁귀)’라고도 불렸는데, ‘들렁’은 속이 빈 공간을 의미하고 ‘귀’는 입구를 뜻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방선문이 큰 암반 사이에 자연적으로 뚫린 통로처럼 형성된 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또 다른 옛 이름으로는 ‘등영구(登瀛丘)’가 전해지며, “영구춘화(瀛丘春花)”라는 절경은 예전부터 제주 10경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2. 자연·지형적 특징

방선문 계곡은 화산암 지대에 형성된 암반하천으로, 흐르는 물이 바위를 침식하는 마식 작용이 매우 잘 발달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다양한 모양의 물웅덩이(소)와 평평한 반석, 절리 구조 등이 계곡 전체에 나타납니다.

특히 중간 부분에는 자연적으로 아치 형태가 만들어진 바위 구조물, 즉 ‘자연다리’가 형성되어 있어 방선문의 가장 독특한 지형 요소로 꼽힙니다. 주위에는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예덕나무 등 상록·낙엽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며,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절벽을 물들여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합니다.

3. 역사적 배경

● 조선 시대 선비들의 풍류 명소

방선문은 조선시대부터 문인·유배객·지방 관리들이 즐겨 찾던 풍류 장소였습니다. 계곡 주변 암벽 곳곳에는 이들이 남긴 마애명(바위글씨)들이 새겨져 있으며, 현재 확인되는 것만 50여 기에 달합니다. 대부분 이름이나 관직을 새긴 명각이지만, 한시나 감상을 적은 글도 일부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제주 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가장 이른 기록으로 알려진 마애명은 1609년, 광해군 때 김치 판관이 새긴 글로 전해집니다. 이후 수많은 제주목 관리, 유배인, 문인이 방선문을 찾아 시를 읊고 바위에 글을 남겼습니다.

● 일제강점기의 기록

일제강점기에도 방선문은 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일본인 화가가 이곳의 풍경을 남긴 기록도 존재합니다. 일부 일본인들이 소풍 장소로 즐겨 찾았다는 회고도 남아 있습니다.

● 문학적 언급

고전소설 『배비장전』의 배경지로 방선문이 자주 거론되며,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일부와도 관련된 장소로 전승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학적 배경은 방선문의 풍류적 이미지와 결합해 그 문화적 가치를 더욱 높입니다.

4. 방선문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방선문은 이름처럼 ‘신선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라는 이미지가 강해 여러 민담과 전설이 전해집니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선녀 목욕 전설

아주 옛날, 하늘의 선녀들이 여름철 중복이 되면 방선문 계곡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해 한 선비가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넋을 잃어 바라보다가 선녀와 눈이 마주쳤고, 놀란 선녀는 황급히 하늘로 돌아갑니다.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는 선비에게 벌을 내려 그를 백사슴으로 변하게 했고, 그 사슴이 한라산 백록담을 지키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주 전통 신화에서 중요한 상징인 ‘백록(白鹿)’과 연결되어 있으며, 방선문의 신성한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5. 보존 상태와 현황

방선문 계곡 일부는 낙석 위험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계곡 주변 암벽의 균열이 관찰된 적이 있어 안전 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또한 자연훼손 우려, 안내 체계 부족 등의 과제가 거론되어 보존과 활용의 균형이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편, 지역에서는 방선문의 자연·문화유산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매년 봄 축제를 개최하거나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6. 문화·학술적 가치

방선문은 자연 경관뿐 아니라 조선시대 금석문, 전승 신화, 옛 탐라 등산로, 고전문학의 배경 등 다양한 문화를 한데 품은 종합적인 문화 경관 유산입니다.

특히 마애명은 제주 지방관의 교체 주기, 유배인 문화, 조선 시대 문학 활동 등을 담은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옛 등산로인 “탐라계곡 → 방선문 → 백록담” 코스와 연관되어 있어 한라산 등반의 옛 모습을 이해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방선문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자연적으로 생긴
둥근 문 모양의 바위를 말하며. 그 주변 계곡을 가리키기도 한다. 방선문 계곡은
제주도 하천의 하나인 한천 중류에 있으며, 영주(제주의 옛 이름)에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열 곳인 영주 10경의 하나이다. 방선문을 영구라고도 불렀는데, 봄꽃이 핀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여 영구춘화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방전문은 거대하고 특이한 바위와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등의 상록활엽수,
예덕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들의 한천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나, 조선 시대
유학자 최익현이 지은 기행문인 “유한라산기”에도 등장한다. 특히 조선 시대에
제주 목사 일행 등이 와서 풍류를 즐기며 바위에 새긴 글자들이 지금도 남아 있어,
자연과 역사 문화 경관을 함께 가진한 명소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서 대략 1km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먼듯합니다.

차량으로 이동 후 계곡 입구에는 낙석 위험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절경을 보고싶기에

드론을 띄워 봅니다.

나무들이 너무 빼곡해 위험하지만 조심스럽게 이륙을 시도해 봅니다.

물도 고여있고 비싼 드론 망가질까봐 계곡 가까이 접근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골프장 옆이라 주변 한번 살짝 찍어보고 돌아옵니다.

착륙도 쉽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시도 해 볼까 합니다.

다음번엔 꼭 내려가서 성공시켜 보이겠습니다.

이상 숨겨진 제주 (hidden) 숨겨진 제주 였습니다.

왜 촬영을 하려고 하는가 하면 바위에 한자들이 적혀 있기 때문인데 재대로 보전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침식되면 침식되는 대로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기록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마애명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아서

방선문 마애명(磨崖銘) — 알려진 주요 목록 및 해석 정리

  1. 마애명의 수와 분포
    • 방선문 계곡 일대에는 약 50여 기의 마애명이 새겨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일부 연구에서는 38건 이상의 연대가 확인된 마애명이 있다고 한다.
    • 특히 문화재 보존 및 조사 측면에서, 암벽 균열과 낙석 위험이 있어서 일부 마애명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보도도 있다.
  2. 연대와 인물
    • 가장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마애명 중 하나는 정동리 판관이 1727년(정미년, 영조 3년) 방선문을 방문하고 새긴 ‘쌍계석문(雙溪石門)’이라는 제영이 있음.
    • 홍중징(洪重徵) 목사는 1738~1739년 방선문을 방문하고 한시(오언절구) 형식의 글 *登瀛丘(등영구)*를 남겼다.
      • 그의 시 일부 (한역 및 해석): 石竇呀然處 / 巖花無數開 / 花間管絃發 / 鸞鶴若飛來
        • 바위 굴(굴틈)은 크게 벌려 있고 / 바위엔 무수한 꽃이 피었네 / 꽃 사이로 거문고(혹은 곡조) 소리 울려 퍼지고 / 마치 난조(鸞)와 학이 날아오는 듯하구나.
    • 또한 김영수(金永洙) 목사(정조 시대)도 ‘환선대(喚仙臺)’라는 마애명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3. 문학적・신선 사상 관련 마애명
    • 여러 마애명은 단순 제명(이름 새김)뿐 아니라 제영(題詠), 즉 시를 포함하는 형태로 남겨졌고, 이는 방선문이 단순한 바위 풍경이 아닌 선계 사상풍류 문화의 장소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 예: 앞서 언급한 홍중징의 『등영구』가 대표적이며, 그의 시는 방선문의 신선적 이미지를 매우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4. 명칭 관련 마애명
    • 방선문 내부 바위에는 단순히 “訪仙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마애명도 존재하지만, 이 마애명은 “각자(제명)”로서 정확한 새긴 시기나 새긴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 일부 마애명은 ‘쌍계석문(雙溪石門)’ 등의 이름으로, 방선문의 특정 바위 구조나 경관과 연결되어 있다.
  5. 보존 상태와 문제
    • 암벽 균열, 나무 뿌리 침투, 비수기 빗물 침투 등으로 인해 마애명의 보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 문화재청과 제주시 간 보존 방안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자연 그대로 보존” 쪽 의견이 강해 인공 보강 시설 설치에 제약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리 및 의미 해석

  • 방선문 마애명은 단순한 이름새김(제명)뿐 아니라 **시와 경관에 대한 감상(제영)**을 담은 글들이 많아, 방선문이 조선 시대 풍류 장소이자 신선 사상을 체현한 공간이라는 점을 강하게 보여줌.
  • 특히 홍중징 등의 문인이 남긴 한시는 방선문이 단순한 자연 명소가 아니라 “신선이 오르는 문”, “선계로의 관문”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강화함.
  • 마애명의 연대가 18세기 전후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 시기 방선문이 제주 목사 및 유배 문인 등의 중요한 방문지였음을 알 수 있음.
  • 현재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마애명도 있어,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보존 가치가 매우 큼.

한계 및 주의점

  • 공개된 논문이나 기사에서는 모든 50여 개의 마애명 각각에 대한 완전한 문자 기록을 제공하는 데이터는 제한적임.
  • 일부 글자는 암벽 마모나 균열로 인해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있음.
  • 번역된 시 문구도 일부만 알려져 있고, 전체 시나 문맥을 복원한 학술 자료는 많지 않음.

제주 영상 사진 유튜브 숨은명소 드론 및 3D Print, Bambu Lab, 스케치업, sketch up, youtube, drone, dji mavic pro 3, 조금 방향성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홈페이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